백두대간과 정맥/백두대간및 지맥

백두대간의 장을 열다...1구간 지리산 상편

고려! 2006. 5. 22. 16:26

1.백두대간의 부활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이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우리나라 땅을 동과 서로 나누면서 많은 골과 들을 낳고 민족의 삼터를 이룬다.

백두대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자연스레 터득한 지리관의 총화이다. 일제침략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잊혀져 왔던 백두대간이 대학산악회를 중심으로 부활되기 시작하여 산악인, 환경운동단체, 일부 시민단체로 확장되어 오다가, 이제 정부에서 민족정기 회복사업의 하나로 국토종합개발계획에도 포함시킬 예정으로 있다.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는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조 영조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산경표"라는 허름한 책을 발견했다. 대동여지도 복간을 준비하던 중 몇가지 의문에 고심했던 이씨에게 "산경표"는 문제를 푸는 열쇠와도 같았다.

"산경표"는 여암이 정리한 우리나라 산의 족보, 즉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속한 산들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었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는 백두대간의 거리개념은 여기서 나왔다.

백두대간 부활에 첫 시위를 당긴 이들은 산악인들이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을 중심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흔적조차 지워져 가시덩쿨로 뒤덮힌 길을 헤치며 온몸으로 금을 그어 나갔다

 

2.백두대간이란 무었인가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비롯하여 지리산까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며 이어진 산줄기다. 그 길이는 1,800km , 높이는 100미터에서 2,740m 까지 이룬다.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약670km이다.  

함경도 흥남과 비슷한 위도상의 마유령(972m) 북쪽은 모두 1천미터가 넘지만, 그 이남으로는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태백산(1,56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 만이 1,500m이상 높이를 간직하고 있다.

남북을 꿰뚫는 세로 산줄기인 까닭에 예로부터 개마고원, 영동과 영서, 영남과 호남을 가로막는 장벽이었으며 그런 만큼 황초령(1,200m), 추가령(586m), 대관령(832m) 등의 고개가 주요 교통로가 되어왔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조선시대 이래 우리 민족의 자연 인식 체계를 이루는 주요한 틀이었다. "택리지"의 이중환과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성호사설"의 이익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를 그리고 지리서를 썼다.


3.태백산맥은 일본 지질학자가 명명한 이름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산맥체계는 1903년 고토 분지로라는 일본인 지리학자가 제안한 지질학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에 대한 지질 및 광산조사에 혈안이 돼 있었다. 청일전쟁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삼았고 특히 금에 관심이 많았다.

고토 분지로는 이 시기에 들어온 지리학자였다. 그는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1900년대 단지 14개월 동안 국내 지질을 연구하고 돌아가 동경제국대학 논문집에 「조선의 산악론」과 「지질구조도」를 발표했다. 산맥 개념이 세워진 것도 이때부터다.

1904년에는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일본인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를 펴냈다. 그는 고토의 산맥지형도를 그대로 차용했다. 1905년 조선이 통감부체제로 들어가면서 교과서 내용에 제재를 받게 됐다. 1908년 지리교과서였던 「고등소학대한지지」에 야쓰쇼에이가 발표한 「한국지리」가 옮겨졌다.

산맥은 지질개념으로 지리를 연구한 한 개인의 연구결과에 불과하다. 백두대간이 단지 명칭상의 문제가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지형의 개념이고 태백산맥은 지질의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맥을 지형의 개념으로 지금껏 써오고 있다. 1906년 당시에도 정연호가 「최신고등대한지지」를 통해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언급하며 대간과 정맥을 말했지만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되고 말았다.

일제는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없애고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땅을 여러갈래로 갈라놓았다. 고토의 산맥도에는 아예 백두산이 없다. 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식민통치에 편한 체제로 바꾸면서 우리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일본이 지배하여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안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이름인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 등의 산맥 이름만이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4.산은 물을 넘지 않는다는 대원칙

조선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산경표"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 이음이 있다.

13정맥은 청천강을 기준으로 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한강을 에워싸는 한남, 한북정맥, 금강을 두른 금남과 금북, 낙동강 좌우의 낙동, 낙남 정맥,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임진북 예성남 정맥, 그리고 해서정맥, 호남정맥, 한남 금북 정맥, 금남 호남 정맥등이다. 대부분의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이유는 노년기 산지의 애매한 줄기 이어짐을 역으로 물흐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동 여지도의 발문에 "산줄기는 분수령을 따르게 마련" 이란 뜻의 "山自分水嶺 " 명문화 하고 있는 줄기 가름의 대원칙 때문이다.


5.백두대간은 1대간, 1정간, 13정맥


6.백두대간 종주

백두대간 부활에 첫 시위를 당긴 이들은 산악인들이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을 중심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흔적조차 지워져 가시덩쿨로 뒤덮힌 길을 헤치며 온몸으로 금을 그어 나갔다.더러는 독도에 실패해 금에서 벗어나 종주를 중단하는 좌절도 겪었다. 더러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폭우속에서 지쳐 울기도 했고,작열하는 땡볕 아래서 더위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피땀과 열정을 바쳐 산을 탔고 그 결과 백두대간은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한반도의 뼈대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했다. 뒤를 이어 일반 산악인들이 줄줄이 백두대간 종주의 장도에 올랐다. 지금 백두대간은 산행에 대한 기초지식과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종주를 할 수 있을 만큼 길이 잘 나 있고 길표시도 완벽하게 마련돼있다.백두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지도상 거리로 6백40여㎞, 실제거리는 1천2백여㎞에 이른다. 산행에만 50일이 걸리며 배낭 무게만도 20㎏이 넘는다. 말없는 산과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나누며 묵묵히 혼자 가는 길로 어떤 이들은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반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고 말한다. 여름철의 뙤약볕과 싸우며 걸어야 할 때도 있고,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내야할 때도 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침낭 하나에 의지해 긴긴 겨울밤을 지새야 할 경우도 있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악천후 속에 오도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헤매야 할 때도 있다.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할 때도 있고 길 아닌 길로 들어서 가시덩쿨에 온몸을 뜯겨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모든 고통을 죄다 풀어놓은 듯한 쓰라린 순간들이 매일매일 종주자에게 다가온다.그러나 종주자들은 말한다. 그 고통의 순간들이 결국 종주를 마치게 해주는 힘이라고. 종주를 마치고 진부령으로 내려오는 순간 왈칵 눈물이 치솟아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고 대부분의 종주자들은 술회한다. 그 모든 고통의 순간들이 너무도 또렷히 떠오르지만 언제나 말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백두대간의 어머니 품같은 따뜻함에 뒤돌아 뛰어가 안기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고 한다.산악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종주를 꿈꾸는 백두대간, 백두대간 종주는 단순한 산줄기를 밟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년 동안 내려온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지리관을 느끼며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확인케 해준다.또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 국가로서 백두대간은 통일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자리한다. 우리가 종주할 수 있는 것은 백두대간의 절반도 안되는 남한구간이다. 민족은 두개의 체제로 나뉘어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철조망이 허리를 조이고 있지만 백두대간은 결코 민족의 하나됨을 포기하지 않는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모든 산악인들은 꿈꾼다.

백두대간 종주기 [한국의산하 산행기]
백두대간을 넘는 사람들


7.백두대간 종주요령

백두대간 종주는 하루에 지도상으로 15㎞씩 걷는다 해도 40여일이 넘게 걸린다. 일주일에 하루씩 쉰다면 대략 50일은 잡아야 한다. 겨울철은 적어도 70일은 잡아야 한다. 해가 짧고 동계장비가 무거운데다 눈이 쌓여 있어 그만큼 산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구간을 나눠서 주말에만 종주를 할 경우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나선다해도 40회 이상은 산행에 나서야 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걸린다.백두대간 종주에는 지도가 필수적이다. 지도는 서울 종로의 중앙지도상사(02-730-9191), 서울 용산의 서울지도센타(02-749-6641) 등에서 살 수 있다. 국립지리원 발행5만분의1 지형도는 25매, 2만 5천분의1 지도는 50매가 필요하며 백두대간 지도를 달라고 하면 알아서 준다.지도는 5만분의1 지형도를 기본으로 까다로운 곳만 2만 5천분의1을 추가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지도를 구입했다면 우선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줄을 그어두는 것이 좋다.계곡으로 빠지지 않게, 지 능선으로 잘못 들지 않게 그어야 하며 연필로 그린 다음 형광펜으로 다시 그려야 실수를 해도 수정할 수 있다. 금을 그을 때는 전문산악인의 조언을 받든지 다른 종주자들이 그린 개념도나 지도를 참조하는 것이 좋다.위험한 구간이 간간히 나타나지만 중급 이상의 실력자라면 어려움없이 통과할 수 있다. 위험구간은 육십령에서 남덕유, 삼봉산에서 도마치고개, 속리산에서 밤티재, 대야산에서 촛대봉재, 점봉산에서 한계령 사이 등이다. 안내산악회의 도움을 받아 함께 가는 것도 좋다.

.............................................................이상 한국의산하에서 펌글

 

백두대간 1구간...지리산 1편

 

2006년 5월 20~21 (토,일요일 무박2일 일정)

 

총 산행거리 16.5km/예상 소요시간 

 

중산리(3.4k/2:30)-로타리대피소(2.0k/2:00)-천왕봉(1.7k/1:00)-장터목대피소(3.4k/1:30)-세석대피소(6.0k/2:30))-거림

 

이하 실제 소요시간

 

23:00  서울 출발

 

03:30  중산리 도착후 산행 출발

04:00  칼바위 3거리

04:40  망바위

05:20  로타리산장

05:55  개선문

06:20  천왕샘

06:50  천왕봉 정상

07:30  제석봉

07:45  장터목산장

09:15  연하봉

10:15  세석산장 하산 시작

13:05  거림골 산행 종료

13:30  서울로 출발

 

17:30  서울 도착

 

이상 총 산행소요시간 약 10시간

 

이하 산행 후기.......

 

아...백두대간...

참으로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그 시간의 감동이 밀려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궂다 점심시간부터 꽤 많은 비가 내려지고 있지만

어제는 정말 맑은 하늘의 하루였었다

주말 밤 9시경 아쉬운 자리를 뒤로하고 난 산행출발 장소로 향했다

 

깊어가는 주말밤 도심엔 화려한 네온싸인 아래 여기저기 술자리로 술렁거린다

조금 서둘러 나오다보니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에 아쉬움이 스친다

정확히 밤 11시가 되자 버스가 움직인다 옆자리 친구는 나랑 갑장이다

지난날에도 몇번 같이 산행하게 돼 편하게 지내는 지기중 한사람이다

 

 

새벽 3시가 넘어 도착한 곳은 백두대간 출발기점인 지리산 중산리

3시30분에 매표가 시작되고 드디어 출발 구호와 함께 대장정의 발을 내딛는다

 

어두움 속을 하염없이 가르며 오르고 또 오른다 분주한 발소리 가쁜 숨소리..

길 한켠 어두움 저쪽에서는 계곡수 소리가 가까운듯하다 이내 멀어지곤 했다

끊임없는 발소리에 놀란듯 이름모를 새소리도 가끔 들려오고

언뜻 옷다벗어새라는 새의 "옷다벗어"하고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자

힘겨움에 조금 여유를 찾으려는듯 한 여성산꾼의 농이 들려와 한바탕 웃음도 쏟아진다

 

오전 4시00분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나 첫 이정표 칼바위 3거리에 이르렀다

여기서 좌측은 곧바로 장터목산장에 다다르는 길이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는 거의 직진코스인 우측오르막길로 다시 발길을 옮긴다 

집안일 회사일 또 그리운 몇몇 사람들을 떠올린다

모두 한결같이 편안한 꿈을 꾸시고들 계시겠지

 

오전 04시40분

 

 

등산로 우측에 떡하니 서있는 모습이 얼핏 보면 아래를 지켜보는듯 하여 망바위라 일컷는거 같다

이제 대략 한시간을 올랐을뿐인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저편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걸음마다 꽤나 힘이 들어갔다

 

오전 05시05분

 

두시간 가까이 오르자 이젠 제법 동녘이 환해져오기 시작한다

한시름 쉬어가고자 멈추어 주변을 살피니 저 멀리 지리산 정상 천왕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아..... 천왕봉... 지난날 남부능선 삼신봉과 백운산에서 멀리 지켜만 보았는데 드디어...

 

오전 5시 20분

 

산행 두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로타리산장이다

이제껏 경사도가 만만치 않았지만 정상이 가까운 지금부터는 정말 각오해야할듯 싶다

아마도 이 산장에 잠시 쉬면서 앞으로의 산행 각오와 힘을 충전하라는듯 생각된다

 

오전 5시55분

 

 

새벽을 여는 시간....

혹시나 천왕봉 일출을 볼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그만 접게되었다

아래를 굽어보니 지리산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져있다

밤새 많이 올랐군.... 위쪽으론 개선문이 보여져 성큼 발을 옮긴다

 

 오전 6시

 

 

개선문을 올라서니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천왕봉

정말 장엄하다고 밖에 표현할수 없었다 아직 오름길이 짧지 않다

 

 

산 능선에 진달래꽃 뒤로 우뚝 선 고사목이 한폭의 그림을 자아내었다

 

오전 6시20분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에 이르렀다

실제로 천왕샘에는 지름 20센티 가량 작은 옹달샘이다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시원한 물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제 정상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자 마지막 힘을 쏟자 아자 힘.....

 

오전 06시50분

 

 

아....왔노라 보았노라 지리산 천왕봉...........

해발 1915미터로 남한에서는 두번째로 높은 산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하는 순간이다

정녕 이 감동과 기쁨은 정상을 오른 자만이 누리는 참맛이리라 생각된다

날은 이미 밝았고 사람들로 조금은 북적이는 정상이었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진을 담았다

 

 

정상에 올라 찍은 사진이다

여기저기 진달래가 수줍은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실 철쭉꽃을 그렸었는데 진달래라니...

역시 높은 산이라 그런듯 아직 철쭉은 꽃망울조차 피어나질 않았다

평소라면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져볼만도 한데 오늘은 약간의 휴식후 서둘러 출발했다

 

 

 

천왕봉을 지나 제석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에 오른다

내리막길과 평탄한길로 이어지는 비교적 편안한 산길이다

여기저기 우뚝 솟아있는 고사목과 소나무들

또 울굿불굿 작은 무리의 진달래 군락도 어우라져 한폭의 풍경화를 그리는듯 하다 

 

오전 07시30분

 

 

 

 

지리산 두번째봉 제석봉을 지난다

정말이지 넓게 펼쳐진 지리산능선을 보니 역시 지리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07시45분

 

한껏 경치에 취해 걷노라니 어느덧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베낭을 풀고 아침식사중이다

오늘 산행코스의 대충 절반을 지나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산하가 내려보이는 한켠에 자리잡고 아침을 먹는다 

약간의 음주에 든든한 배를 채우니 신선인들 부러우랴...

 

 

누적된 피로에 배도 채워진고로 넉넉히 휴식을 취하고자 두다리를 쭉 뻗는다

얼마후 문득 고개드니 저 멀리서 연하봉이 유혹하는듯 하니 어찌 더 앉아 있으랴

 

 

 

 

 

오전 9시15분

 

꽃길을 건너 산능선을 구비구비 돌아 도착하여 이른 곳은 바로 연하봉이다

1667미터 연하봉은 세번째로 맞는 산봉우리로 비교적 낮은 봉우리이며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봐도 아름다운 자태이다

연하봉 가까이 이르니 저 멀리 삼신봉 뒤로 보여지는 촛대봉도 가까이 느껴온다

 

 

 

 

아 저 아름다운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가 오늘의 마지막 봉 촛대봉이다

물론 앞으로도 3시간 이상 하산길이 남아있었지만

지난 산행으로 인한 피로가 꽤 많이 누적되어 있어서 절로 감탄이 솟는다

 

오전 10시05분

 

 

 

마침내 촛대봉에 이른다

정상엔 진달래꽃이 만발하다 고지가 높아서인지 이제서야 꽃망울을 머금는 철쭉꽃도 보여진다

원래 세석산장에 철쭉꽃은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의 멋진 볼거리라고 누군가 말해준다

한참을 그렇게 촛대봉 바위에 서있었다 이제 드디어 하산길.........

처음 오르막길에서 지쳐서인지 전반적으로 많은 피로를 느낀 하루였다

 

오전 10시20분

 

 

오랜만에 찾은 세석산장을 뒤로하고 거림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다음에 다시 찾아 백두대간 2구간을 출발할 이 지점

아쉬움을 뒤로한채 서둘러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등산길은 계곡을 끼고 길이 이어진다

 

오전 11시40분

 

 

역시 산이 깊어서 유명한 계곡은 맑고 시원한 물로 넘쳐나고 있었다

잠시 쉬어 시원한 물에 발도 담으며 땀에 베인 몸과 마음을 닦는다

아...약간의 여유가 아쉽기만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오후 1시 05분

 

마침내 거림골 매표소를 지나 백두대간 1구간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멀리 지나온 산자락과 넓은 계곡이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백두대간 1구간을 마치는 순간 이미 난 백두대간의 웅장함에 깊히 빠져들고 있었다